[세션 1: 시민의 커뮤니케이션 권리 확장(총론 발표)]
              

 11월 12일 오전 10시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2019 미디어정책컨퍼런스’의 제1세션은 전체 토론의 총론적 성격으로, ‘미디어개혁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 커뮤니케이션 권리와 자유의 확장’을 주제로 한 발표가 이어졌다.

 사회자인 임동욱 교수(광주대)는 먼저 미디어개혁시민네트워크 참여 단체들이 미디어 환경 변화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지난 7월부터 4개(시민·이용자, 플랫폼·네트워크, 콘텐트, 규제체제) 분과로 나눠 논의를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늘 토론에서의 발표 내용은 논의의 최종 결과가 아니라 앞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공론의 시작으로, 결론이 아니라 서론으로 이해해 달라.”고 강조했다.  

 채영길 교수(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등 시민·이용자분과 소속 정책위원들이 발표와 토론을 맡은 제1세션은 “거대 사업자 중심에서 시민과 인간 중심으로 미디어를 바꾸자”는 전제 아래, 미디어개혁시민네트워크가 목표로 하는 시민이 참여하는 새로운 미디어개혁기구에서 다룰 정책의 틀과 핵심 개념을 총론적으로 발표하는 자리였다.

 

▲ “평등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개혁 패러다임의 전환 필요”

 주제 발표에 나선 채영길 교수(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는 현재의 미디어환경에 맞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제안했다. 각 분과에서 논의의 철학적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권리’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채 교수는 “기존의 논의에서 자유를 많이 담았다면, 이제는 평등을 많이 담아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현재 사회를 자연에 비유했다.

 “현재의 사회는 소수의 생명만을 더욱 부유하고 자유롭게 만들면서 다수를 결핍상태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자연계의 강자독식, 약육강식과 닮았다”는 것. 자연은 자유롭기는 하지만 평등하지는 못하다. 자연에 비유되는 사회도 이러한 속성을 가졌으며 미디어 환경도 예외일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는 소득의 70% 이상을 임대료와 공과금을 내는 데 지출하는 가정이 25% 이상이며, 수 백만 명이 임대료를 내지 못해 퇴거당한다. 이와 관련해 수많은 보도와 정책이 나왔지만 임대료와 공과금이 빈곤층에 얼마나 직접적이고 심대한 문제인지는 알 수 없다. 채 교수는 이 문제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덜 심각해서가 아니라 언론과 사회의 엘리트들 누구도 그 문제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예가 “빈곤을 양산하는 경제적 상태, 빈곤한 자들을 대표하지 못하는 정치적 상태, 빈곤에 대해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사회적 상태를 낳는 구조적 결함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채 교수는 “사회경제적 문제와 이를 양산하고, 은폐하는 구조적 고리”들은 사회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며 ‘우리는 가난을 어떻게 외면해 왔는가’(21세기북스)란 책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이 책은 철거민, 복지수급자, 장애인, 노점상, 쪽방촌 등 빈곤에 의해 사회밖으로 내몰린 사람들에 대한 조사 및 교육 프로젝트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던 사람들이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국가 시스템을 통해 뿌리 뽑히는 국가 폭력도 현재 진행형”이라고 적고 있다.

  때마침 경향신문이 11월 14일 보도한 ‘마켓·식당·관공서는 물론 TV·신문에서조차 차별받는 이주민들’이란 제목의 기사에서도 이와 유사한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이주민 100명을 대상으로 한 ‘2019년 일상차별 설문조사’ 결과에서 이주민은 마켓과 대중교통에서 10명 중 4명꼴(39%)로 무례를 경험했다. 이어 거리(35%), 이웃과의 관계(27%), 출입국사무소(20%), 행정기관(13%)의 순이었다. 차별과 관련해서는 응답자의 71.2%가 직장에서 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5개 신문사와 8개 방송사의 저녁종합뉴스, 시사 및 대담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한 결과에선 2324건의 이주민 관련 기사와 방송 중 이주민 인권을 침해하고 차별한 경우가 모두 262건으로 나타났다.

         

 ▲ 소외의 도미노를 가져온 구조적 결핍 3가지 

 ① 권리 보장 없는 민주주의의 자유로운 확장

 한 사회에서 빈곤층이 갖는 어려움은 경제적 박탈감에 그치지 않고, 정치적 소외, 사회적 (소통의) 소외로 이어지며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원인이 된다.   

 채 교수는 빈곤층 또는 소외 계층의 이중적 결핍 현상을 예를 들며, 이러한 원인을 △권리 보장 없는 민주주의의 자유로운 확장 △파퓰리스트 공론장과 미디어 쇼핑몰 △위임적 시민사회 확장이라는 3가지의 구조적 결핍 요인으로 설명했다. 

 현재의 정치는 투표라는 민주주의의 형식적 틀을 유지한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다루는 주요 이슈나 방식은 유권자인 ‘나’에게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채 교수는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권리를 박탈하는 정치 체제”로, 현 사회를 ‘권리 보장 없는 민주주의의 자유로운 확장’이라고 규정했다. 

 채 교수는 “참여의 평등을 위한 전환적 계기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미국의 정치학자인 로버트 달(예일대 정치학과 명예교수·1915~2014년)의 주장을 인용했다. 로버트 달은 “오늘날의 정치는 선택적으로 평등하고 포괄적으로 배제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만을 강화한다.”고 밝히고, “대리하고 대표만 하는 정치 사회는 모든 시민의 참여에 의한 평등의 정치가 실현 불가능한 이상인 반면, 정치적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할 뿐 아니라 실현 가능한 목표”라고 주장했다.      

 

② 파퓰리스트 공론장과 미디어 쇼핑몰

 흔히 공공성이라 불리고 대표되는 미디어의 공적인 기능은 민주주의 공론장의 제공과 실현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 

 채 교수는 이와 관련해 우리가 미디어 자유를 옹호하는 근본적 이유는 “진정으로 자율적인 공적 영역에 도달하려면 사람들이 광장을 통과해야 하며, 그 광장에서 사적인 관심사를 공공선으로, 또 공공선을 사적인 관심사로 전환하며 소통하려는 노력을 위한 기초가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제한된 전파 자원과 커다란 매체의 파급력은 미디어를 그러한 공공 영역에 강제하고 미디어 공공성을 법적으로 규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채 교수는 또 공공성이란 규범적 가치는 “다른 이와 만날 수 있는 공론장으로 진입과 참여 조건의 평등한 배분, 일상적인 것들을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공통 언어와 자원의 소유,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전환을 통해 공공선을 함께 창출하고자 하는 연대의 토대가 현실화 될 때” 정치문화적으로 유의미하다고 전제하면서,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정치 사회는 권리없는 불평등한 민주주의만을 실현했고, 미디어 역시 종치 조직들의 탈취에 의한 축적 양상을 복제하면서 스스로가 탈취의 담론을 양산하고 정당화하며 축적의 이익을 향유해 왔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90년대 이후 미디어가 공공영역에서 사적영역으로 급속히 타락하고 자본의 논리에 편승하면서 파편화되었다고 분석했다. 

 채 교수는 이러한 “권리없는 민주주의, 시장과 자본의 자유 및 독점의 확산”이 심화되면서 “오늘날 시민들은 자유롭게 혐오하고 증오하는 파퓰리스트 공론장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전락하거나, 자유롭게 미디어를 쇼핑하는 소비자로서만 존재할 뿐”이라고 강조했다.

 △ 시민 소외 및 배제의 자유 확대와 공론장의 파편화 과정

 특히 “정치 사회와 보수 미디어 자본의 공모 하에 형성된 파퓰리스트 미디어의 등장, 국제 거대 독점적 미디어 기업의 등장, 기존 공공 미디어가 시장과 정치 사회에서 쇠락하고 이에 따라 시민의 소외와 권익이 소멸하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조건이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정의했다. 이로 인해 시청자 권익과 참여는 형식적으로만 보장되고, 전문가와 사이비 전문가가 시민의 참여를 대체하고 시청자 권익은 미디어 자본과 정치권력의 이해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 방식으로 공론장이 조직되고 있으며, “정치와 자본 권력 등의 이해를 보호하는 공론장 카르텔을 형성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공론장 속에 시민은 소외되거나 “OTT(Over The Top·온라인동영상제공서비스)로 상징되는 상업화하고 시장화한 거대한 미디어 쇼핑몰에서 자유롭게 소비할 권한만 남은 시청자”가 되었다고 규정했다.

 ③ 시민 참여를 퇴락시킨 ‘위임적 시민사회’

 정치 사회와 미디어에 있어서 개별 시민들이 소외되고, 자본이 만든 거대 미디어에서 소비할 권한만 남았다고 진단한 채 교수는 “단체적 시민사회 역시 공중과 시민단체 간에 단절이 빈번해지고 있다”며, 시민의 참여는 익명의 개인으로, 정치적 공간에서 기획에 동원되는 “참여의 소외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채 교수는 이제까지의 미디어 분야의 개혁을 위한 참여의 성격 역시 전문가와 지식인이 대신하는 ‘위임적’인 경향을 가졌다고 비판하며, “기존의 미디어 공공성을 위한 시민 사회의 노력은 전문성을 지닌 언론인의 후견주의(계몽주의)에 머문 한계란 지적은 타당하다”는 데에 뜻을 같이 한다고 덧붙였다.  

 

▲ “미디어개혁은 평등한 커뮤니케이션 권리 확대로”

 채 교수는 자유로움 속에 은폐된 불평등한 권리 배분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디어개혁의 패러다임 전환과 평등성에 기반을 둔 커뮤니케이션 권리 확충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는 정부와 시민 등이 함께하는 미디어개혁기구가 어떤 개혁을 주제로 정책 방향을 정해야 할지를 포괄적으로 담은 주장이다.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정의에 대해서는 “공동체 구성원이 선택적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인생 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소통 환경을 공동체 구성원이 동등하게 상호주관적인 방식으로 조직할 수 있는 권한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했다. 커뮤니케이션 권리는 원래 1969년 쟝 아르시가 당시 뉴미디어 기술인 위성통신에 대한 접근권을 언급하며 처음 등장한 말로, 미국과 영국 등으로부터 저개발국과 개발도상국의 정보와 뉴스 생산과 이용의 독립성 또는 주권을 위해 커뮤니케이션의 자유를 넘어 이를 실현할 권리 개념으로 사용됐다. 여기에 채 교수는 평등성을 한층 강조한 시민 개개인의 커뮤니케이션 권리로 “자유의 권리가 아니라 행위할 권리이며, 원하는 대로 생각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의견을 가질 권리”라고 설명을 덧붙였다.

 이와 함께 “자유주의적 권리로서 우리 헌법에도 담긴 ‘표현의 자유’의 전제는 모두 그 권리를 가지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거주지와 생계의 방식을 박탈당한 이들에게 커뮤니케이션 자유는 자신들의 권리를 실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기에 공허한 자유일 뿐”이라고 부연했다. “커뮤니케이션 권리는 자유의 문제인 동시에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기본권의 평등한 배분 문제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면서 “기본재로서 커뮤니케이션 권리는 교섭적 성격을 가져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채 교수는 끝으로 모든 미디어가 동일하게 소외된 시민을 배제하고 다수의 시민을 소외시키고 있는, 즉 “권리의 불평등한 배분 상태를 중지시키고 평등한 배분의 조건을 조직하는 것에서부터 미디어개혁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면서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조건과 내용을 급진적으로 조직해 냄으로써 그러한 주장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채영길 교수에 이어 토론자로 나온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한국을 찾은 미국의 미디어활동가가 ‘미국엔 표현의 자유가 없다’고 말 한 적이 있는데, 맥락적으로 표현할 자유가 있어도 수단이 없다는 맥락으로 이해했다”며 “동등하게 표현할 수 있는 조건으로 본다면 이를 커뮤니케이션 권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사회를 바라볼 때, 30년 전보다는 일반 시민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면서 “과거의 미디어에 대한 복합적인 분석, 미래에 등장할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정교한 분석을 통해 미디어개혁의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밝혔다.

 오 대표는 커뮤니케이션 권리의 과제와 연관된 의제로 ‘프라이버시와 개인 정보 보호’에 대한 논의의 필요성도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정보를 누가 통제하는 가는 권력의 문제”라며 “권력을 가진 공직자의 재산 등은 공개할 수 있지만 권력이 없는 사람의 프라이버시는 지켜 줘야 한다고 판단하다”면서 글로벌 미디어 기업 등이 시민의 개인 정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묻는 것도 중요한 이슈라고 강조했다.

 한선 교수(호남대 신문방송학과)는 논의에서 시장과 자본 관계로 설명하기 힘들며 더 어려운 여건에 놓인 지역 언론에 대한 논의가 빠진 점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며, 중앙과 지방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도 각각의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 교수는 또 “커뮤니케이션 권리가 들을 권리보다 말할 권리에 보다 많은 포커스가 맞춰진 듯하다”고 우려하며 “호혜적 권리가 없다면 확증편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모두가 소통을 염두에 둔 커뮤니케이션 권리여야 한다.”고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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