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B청주방송 이재학 PD 사망 관련 4자 합의

진조위 이행요구안 수용키로 합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 물꼬 트는 역사적 전기”

“우리 형 기억하고 앞으로 약속 잘 지키는지 지켜봐 달라”

CJB청주방송의 노동자 고(故) 이재학 PD가 살아생전 이루고자 했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첫 단추가 꿰어졌다.

 

23일 오전 10시 고인의 유족과 ‘청주방송 故 이재학 PD 대책위원회’・전국언론노동조합・청주방송 등 4자는 고인이 청주방송의 노동자임을 인정하고 고인의 명예 회복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고인의 생전 바람인 청주방송 내 비정규직 고용구조 및 노동조건 개선에도 합의했다. 고인이 ‘억울하다’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 지 171일이 지난 후의 일이다.

 

◆ 먼 길 돌아, 2월 27일 ‘최초 합의’ 지키기로 합의

 

23일 4자는 지난 6월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발표된 ‘청주방송 故 이재학 PD 사망사건 진상조사위원회’의 진상조사 결과와 이행요구안을 수용하고 적극 이행하기로 합의했다. 사실 이같은 합의에 이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4자는 지난 2월 27일 진상조사위원회의 구성 등을 위한 합의에서 ‘(4자가) 조사 결과를 수용하고 해결방안과 개선방안을 즉시 이행하며 이행 현황을 점검 받는다’고 미리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청주방송 측은 실제로 조사결과보고서와 이행요구안이 국회에서 발표되자 그것을 즉각 수용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행태의 배후로 대주주인 이두영 이사회 의장(두진건설 회장)이 지목되기도 했다. ‘이두영 의장이 청주방송 경영에 개입해 합의를 깨뜨리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진통 끝에 4자는 23일 최초 합의로 다시 돌아가게 됐다. 4자는 이번 합의서 첫머리에 “최초 4자 대표자 합의 정신에 따른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이제 청주방송이 최초의 합의에 따라 진상조사위원회의 이행요구안에 담긴 ‘고인의 명예회복’과 ‘청주방송 내 비정규직 고용구조 및 노동조건의 개선’ 등의 이행을 성실히 해나갈지 두고 볼 일이다.

 

◆ 故 이재학PD 명예회복 및 책임자 조치


23일 합의에 따라 청주방송은 무엇보다 먼저 ▲공식사과 및 재발방지 입장 표명 ▲책임자 조치 ▲고인에 대한 명예회복과 예우 등에 나설 예정이다. 

공식사과와 재발방지에 대한 청주방송의 입장 표명은 합의일로부터 일주일 이내 이뤄지게 된다. 진상조사위원회의 이행요구안은 “청주방송 이두영 전 대표이사와 이성덕 대표이사는 고인의 사망에 관해 유족과 조직구성원, 지역사회에 공식 사과한다. 유족에게는 직접 만나 사과한다”고 정하고 있다.

 

사과의 내용에는 고인의 노동자성 및 부당해고 사실에 대한 인정과 소송 과정에서 청주방송 일부 구성원의 위법・부당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의 인정이 담길 예정이다. 아울러 고인의 사망과 직장 내 괴롭힘 등의 책임이 청주방송 측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재발방지의 약속을 담는 것 역시 사과에 포함된다.

 

직장 내 괴롭힘 행위자 및 위법・부당행위자에 대한 조치는 1개월 이내에 마무리하는 것으로 정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이들 가해자의 명단과 징계사유 및 징계수위를 청주방송에 별도로 통보하고, 청주방송은 이들에 대한 징계 절차를 진행할 에정이다.

 

◆ 고인의 명예 회복과 유족 보상

 

청주방송은 합의 후 일주일 내에 고인에 대한 명예회복의 일환으로 고인의 명예사원증을 유족에게 수여할 예정이다. 또한 고인이 근무했던 기획제작국에 고인의 책상과 정규직 명패를 2주간 비치하고, 같은 기간 동안 사내에 고인을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23일 합의서 조인식이 끝난 뒤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오정훈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고인의 명예 조합원증서를 유족에게 수여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유족에 대한 보상 역시 합의 후 일주일 내에 이뤄진다. 이행요구안은 청주방송이 고인의 사망 책임에 부합하는 보상을 신속하게 실시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고인의 사망 후에도 계속 진행되던 고인의 근로자지위확인소송 항소심은 ▲고인의 노동자성과 부당해고 사실 인정 ▲고인의 사망 책임에 대한 청주방송의 인정과 사과 ▲해고기간 동안의 임금 지급 ▲위 내용에 반하는 주장의 금지 등을 담은 강제조정 절차로 종결 된다.

 

◆ 비정규직 고용구조・노동조건의 개선

 

이번 합의에서 고인의 생전 바람이었던 청주방송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와 관련해 특히 전향적인 합의가 이뤄졌다.

 

4자는 청주방송에서 노동자성이 인정되고 불법파견으로 판단되는 직군을 2022년 말까지 정규직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전환 대상자로는 AD 3명, MD 4명, 청주방송이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자회사 ‘엔터컴’ 소속 노동자 2명 등 총 9명이다. 전환 시 비정규직 근무기간 경력을 인정하고, 호봉・직급・근속년수 역시 비정규직일 때의 경력을 산입해 결정한 뒤 정규직 단일 임금체계를 적용한다.

 

기획제작국과 편성제작국에서 일하는 방송작가(라디오 작가 포함) 9명 역시 직접고용하기로 했다. 사실상 청주방송의 전속성을 갖고 있고, 상시 지속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진상조사위원회의 설명이다. 올해 7월 31일까지 부서별 작가 대표와 언론노조 CJB청주방송지부・회사・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작가 고용구조 개선 TF’를 구성해 이들의 직접고용 및 정규직 전환방식과 시기, 전환 후 노동조건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도 시작된다. 올해 9월 30일까지 비정규직 운용 등의 결정이 각 부서나 개별 PD에게 일임되지 않도록 회사가 총괄 관리하고, 관련 규정을 마련할 예정이다. 또한 복리후생, 상생협의회 계약해지 원칙 등을 명시한 채용 계약서를 도입해 회사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일방적으로 계약해지 못 하도록 정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은 급여테이블을 제정함과 동시에 급여 수준을 인상하는 방향으로 현실화한다. 아울러 매년 정례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을 인상한다.

 

이 외에도 청주방송 조직문화 및 시스템의 개선, 기타 상시・지속 업무를 하는 노동자의 직접 고용, 정규직 미전환 인원에 대한 고용안정 방안의 마련 등이 이번 합의로 이행될 예정이다. 더 나아가 진상조사위원회는 방송사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된 법・제도 개선에 나설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번 청주방송 사태를 계기로 언론노조가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정책적 역량을 집중시켜야 하는 이유다.

 

◆ “언론계 전체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 위한 열쇠”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23일 합의 조인식을 마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4자 합의가 우리나라 전체 비정규직, 특히 언론계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여는 충실한 모델이 된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10여 명의 진상조사위원들이 낸 이번 보고서는 지금까지 나온 어떤 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보다 촘촘하다”면서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역사적 전기를 마련한 것”이라 평가했다.

 

이어 “합의 이후 언론노조와 진상조사위원회는 이행 점검을 3년 동안 책임져야 한다”면서 “사측 역시 이행의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마이크를 넘겨 받은 이용관 한빛노동인권센터 이사장은 여러 차례 울먹이며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고인이 이제 나머지 문제는 저희들에게 맡기고 우리 이한빛 PD와 함께 하늘나라에서 편안한 안식을 하시길 기원한다”며 운을 뗐다.

 

이어 “이재학 PD와 이한빛 PD가 꿈꿨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한 단초를 만들었다. 이제 첫 발을 뗐다”며 “이것으로 제가 이재학 PD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어서 참으로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사를 대표해 이성덕 청주방송 대표이사와 경영진들이 협상 타결에 강력한 의지를 갖고 협력해 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이성덕 대표이사는 발언에 앞서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이며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대표이사는 “고인의 사망에 청주방송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고인과 유족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한 “청주방송은 이번 일을 계기로 잘못된 일을 반성하고 과감히 고쳐서 새로운 마음으로 좋은 방송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저희 방송은 도민 한 명 한 명에 귀 기울이고 꼭 필요한 방송이 되도록 사원 모두가 한 마음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혜진 진상조사위원장은 “이행요구안이 청주방송에 좋은 변화를 이뤄내리라는 확신을 가져달라”면서 “이행이 지금 당장은 힘들거나 불편해도 청주방송 구성원 전체의 공동체를 회복하는 길이라는 점을 함께 기억하고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청주방송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집단화 되도록 함께 돕고 나서자”며 “이 분들이 동료와 구성원으로 인정되고 함께 목소리 낼 수 있도록 집단화 될 때 이행 역시 현실화 되는 과정을 밟아갈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고인의 동생이자 유가족 대표인 이대로 씨는 “이제는 이행 뿐이다. 여기 있는 모든 분들이 서로 얼마나 약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관심을 부탁드린다”며 “세상에서 제일 용기 있던 사람인 저희 형 이재학 PD를 기억하고, 그가 이 시대에 이런 말도 안 되게 아픈 곳을 세상에 알리고 동료를 위해 싸워 세상을 바꾸고자 큰 용기를 냈음을 꼭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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