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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실위논평] 저인망식 통신 조회, 여전한 수사 구태

등록일
2021-12-16 15:36:11
조회수
1098

[민실위 논평] 저인망식 통신 조회, 여전한 수사 구태

 

 “사실 ⭘⭘하고 △△이 ▢▢▢에 수출한 이동통신 교환기에도 이미 감청 장치가 다 들어갔어요.”
 2007년 6월 국가정보원 국장이 한 말. ‘⭘⭘’과 ‘△△’는 한국 통신사업자와 관련 장비업체이고, ‘▢▢▢’은 동남아시아 한 국가였다.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을 일부 개정해 휴대폰 감청을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불쑥 말실수처럼 불거졌다.
 놀라웠다. 한국 기업이 해외에 감청 장치를 넣은 통신 장비를 수출했다는 얘기였으니까. 특히 “이동통신 교환기에도”라고 말한 것은 국내 설비에도 이미 같은 장치가 들어가 있다는 뜻이었기에 충격이 컸다. 통비법 개정 전이어서 휴대폰을 감청하는 건 불법이었음에도 관련 설비를 이미 갖출 정도로 국가정보원과 한국 통신기업이 재발랐던 것일까. 아니면, 불법 감청을 일삼다가 ‘이러다 큰일 치르겠다’ 싶어 합법한 세상으로 걸어 나오고 싶었을까.
 그때 국정원은 곧바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인 2009년에야 휴대폰 감청이 합법화했다. 통비법상 ‘감청’은 이용자 동의 없이 목소리를 듣거나 ‘호(call)’를 방해할 수 있는 것. 이메일 속 글과 부호와 영상 들도 동의 없이 보거나 송수신할 수 없게 막을 수 있다. 하여 ‘통신제한조치’라고 일컬었다. 그해 이명박 정부 국정원은 휴대폰 이용자가 전화나 문자를 보낸 때와 통화한 시간 들에 머물렀던 ‘통신사실 확인자료’에 발신 기지국 위치까지 더해 얻어 냈다.
 휴대폰 감청을 합법화한 데다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제공받는 폭을 넓혀 여유를 얻은 덕이었을까. 휴대폰과 집 전화와 인터넷과 이메일을 쓰는 이의 이름과 주민번호와 주소 들이 담긴 ‘통신자료’ 제공 건수가 가파르게 치솟았다. 실제로 2007년 하반기 209만 건, 2008년 하반기 262만 건쯤이던 수사 기관의 ‘통신자료’ 취득 수가 2009년 하반기 344만9890건으로 크게 늘었다.
 국정 과제 앞에 ‘창조’를 들씌웠던 박근혜 정부에선 급기야 590만1664건(2015년 상반기)에 닿았다. 국정원 덕에 나팔을 불기라도 하듯 검경의 통신자료 취득 수도 덩달아 뛰었으니 그야말로 ‘창조적인 저인망 수사’였다. 말인즉 ‘수사’였으나 시민 눈엔 ‘마구잡이 사찰’로 보였다.
 2016년 정보 인권 시민단체와 전국언론노동조합이 팔 걷고 나서 소송과 헌법 소원을 불사한 까닭이었다. 하여 멈췄을까. 아니, 2020년 하반기에도 통신자료 256만2535건이 국정원과 검찰과 경찰로 넘어갔다.
 아직 통신사업자로부터 수사기관에 제공된 2021년 상·하반기 통신자료 건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수사 목적에 따라 일부 그 필요성을 인정한다 해도 이런 저인망식 통신자료 조회는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특히 최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여러 언론 매체의 법조·정당 출입 기자들과 민간인에 대한 통신자료를 무더기 조회한 것이 그렇다. 명확한 조사목적에 대한 설명과 사전 동의 없이 언론의 취재행위를 검열하려던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과거 검찰의 구태를 바로 잡겠다고 만든 공수처가 ‘창조적인 저인망 수사’ 구습에 젖어서야 되겠는가. 
과거 국정원과 검찰이 공작 수단으로나 쓰던 낡은 그물로는 진정한 개혁을 이룰 수 없을 터다. 저인망 끌다가 제풀에 울까 걱정이다.

2021년 12월 16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작성일:2021-12-16 15:36:11 1.217.161.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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